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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아이들의 것”

      워싱턴지역 유일의 기독교 언론 만나24 뉴스가 오는 27일(토) 오후 5시, 엘리콧시티 소재 벧엘교회(담임목사백신종)에서 ‘캄보디아 고아돕기 기금모금 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음악회는 캄보디아 칸달(Kandal) 지역에서 사역하는 김정영 선교사의 ‘주님의 자녀(HISCHILD)’를 후원하는 행사로 마련된다. 김 선교사는 1995년, 척박한 환경에서 굶주리는 고아와 거리에 버려져 위기에 처한 아이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전하기 위한 일념으로 고아원을 시작했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아이들은 출신, 성별, 장애와 상관없이 모두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며, 주님 나라를 확장할 귀한 일꾼이라는 확신으로 사역해 오고 있다.   고아원은 그리스도 대가족 공동체로서 아이들에게 의식주, 공교육 및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아이들은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통해 예수님의 작은 제자로 양육 되어 지고 있다.   현재 35명 초등학생과 중학생(5~16세), 14명의 청소년과 대학생(17~19세)이 사회로 돌아가고자 기술 연마 또는 대학에서 학업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위한 기금 모금 음악회는 DMV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인 권기선, 윤해든, 정유진 소프라노와 이성진 씨 찬미 가족 찬양단, 코람데오 남성 중창단, 징검다리 난타팀 등 총 6팀의 재능기부로 뜻있는 무대가 꾸며진다.   행사를 준비하는 만나24 뉴스 박노경 대표는 “대가없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면서 “생명의 탄생은 틀림없는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고아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며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박 대표는 “작은 사랑이지만 이번 음악회가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그 의미있는 행사에 모든 분들을 초청한다”고 말했다.   현재 고아원에서는 다수의 아이들을 한번에 태워 등・하교시 이용할 중고트럭이 긴급히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회 입장료(20달러) 및 기부금 등 이날 발생하는 수익금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통학용으로 쓰일 트럭 구입비(1만7천달러)를 위해 전액 쓰인다.     문의 및 기부: 443-928-0303 Zelle과 벤모는 [email protected]     주소 : 3165 St. Johns Ln, Ellicott City, MD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하나님 사랑 주님 나라

2024-04-25

“하나님 나라는 아이들의 것”

        워싱턴지역 유일의 기독교 언론 만나24 뉴스가 오는 27일(토) 오후 5시, 엘리콧시티 소재 벧엘교회(담임목사백신종)에서 ‘캄보디아 고아돕기 기금모금 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음악회는 캄보디아 칸달(Kandal) 지역에서 사역하는 김정영 선교사의 ‘주님의 자녀(HISCHILD)’를 후원하는 행사로 마련된다. 김 선교사는 1995년, 척박한 환경에서 굶주리는 고아와 거리에 버려져 위기에 처한 아이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전하기 위한 일념으로 고아원을 시작했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아이들은 출신, 성별, 장애와 상관없이 모두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며, 주님 나라를 확장할 귀한 일꾼이라는 확신으로 사역해 오고 있다.     고아원은 그리스도 대가족 공동체로서 아이들에게 의식주, 공교육 및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아이들은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통해 예수님의 작은 제자로 양육 되어 지고 있다.   현재 35명 초등학생과 중학생(5~16세), 14명의 청소년과 대학생(17~19세)이 사회로 돌아가고자 기술 연마 또는 대학에서 학업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위한 기금 모금 음악회는 DMV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인 권기선, 윤해든, 정유진 소프라노와 이성진 씨 찬미 가족 찬양단, 코람데오 남성 중창단, 징검다리 난타팀 등 총 6팀의 재능기부로 뜻있는 무대가 꾸며진다.   행사를 준비하는 만나24 뉴스 박노경 대표는 “대가없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면서 “생명의 탄생은 틀림없는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고아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며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박 대표는 “작은 사랑이지만 이번 음악회가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그 의미있는 행사에 모든 분들을 초청한다”고 말했다.   현재 고아원에서는 다수의 아이들을 한번에 태워 등・하교시 이용할 중고트럭이 긴급히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회 입장료(20달러) 및 기부금 등 이날 발생하는 수익금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통학용으로 쓰일 트럭 구입비(1만7천달러)를 위해 전액 쓰인다.     문의 및 기부: 443-928-0303 Zelle과 벤모는 [email protected]     주소 : 3165 St. Johns Ln, Ellicott City, MD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하나님 사랑 주님 나라

2024-04-19

사람은 다 때가 있다!

 전에는 저의 두 팔을 뒤에서 맞잡을 수가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잡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때밀이 수건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은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중에서 팔고 있는 손바닥만 한 일명 ‘이태리타월’은 등을 밀 수 없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로 수건으로 등을 밀었습니다만 지금은 머플러처럼 나온 이태리타월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길을 가다가 ‘다 때가 있다’는 목욕탕의 광고문을 보았습니다. 광고문의 ‘때’라는 말에는‘ 몸의 때’라는 의미도 있지만 ‘기회’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저는 이 광고문은 모든 사람에게는 몸의 때가 있고 기회도 있다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는 재치 있는 광고라고 생각합니다. ‘때’ 하면 저는 때밀이 수건과 목욕탕이 떠오릅니다. 제가 목욕탕에 가면 먼저 반달 모양의 유리문이 보이고, 돈을 내면 입장표를 내줍니다. 저는 ‘맡기지 않는 귀중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주인 백’ 이라는 안내문을 갈 때마다 보았습니다.       제가 어린 때는 이 말을 읽을 수는 있었는데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보니, 커서 보게 된 이 안내 글처럼 맡기지 않는 귀중한 내 생명은 하나님도 책임지지 않겠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몸의 때를 밀기 위해 목욕탕에 가는 것처럼 영혼의 때를 밀기 위해 교회에 오라고 전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들 교회’는 ‘회개는 영혼의 때를 벗깁니다!’라는 복음광고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의 삶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에서 가장 큰 차이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시간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고 봅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삶이 이루어지는 천국이나 지옥에서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영원’입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보면 삼촌 악마가 조카 악마에게 인간을 비웃으며 하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불행이 닥쳤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이 권리의 침해로 느껴질 때 분노한단다.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시간을 느닷없이 빼앗겨 버리는 것만큼 화내기 쉬운 상황은 없지. 한적한 저녁 시간을 보내길 고대했는데 뜻하지 않는 사람이 불쑥 찾아오거나 하면 인간은 화를 쉽게 내지. 왜? 자기 시간은 그야말로 자기 것인데 억울하게 도둑맞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는 열심을 다해 인간이 마치 자신이 하루 24시간의 합법적인 소유자로 생각하도록 하려무나.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시간은 그들의 것이 아니지. 순전히 선물로 주어진 것인데, 그들은 그걸 몰라. 만약 시간이 인간들 것이라면 해나 달도 저희 소지품이게. 인간이 시간을 자기를 만든 이의 뜻에 따라 써야 할 처지라는 걸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악마들이 할 일이지.”       저는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셨다고 믿기 때문에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사람의 신앙인 입장에서 시간의 주인인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고 또한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찬송가 523장 또는 통합찬송가 262장의 “어둔 죄악 길에서” 후렴에 보면, “이때라, 이때라, 주의 긍휼 받을 때가 이때라” 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짧은 가사에 ‘때’가 4번이나 나옵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는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2번이나 ‘때’가 나옵니다. 솔로몬이 노년에 썼다는 전도서 3장에도 ‘모든 기한에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 할 때가 있느니라” 예수님도 30년의 ‘때가 차매’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때가 찼을 때 부르셨고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저는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기회가 왔을 때 주님께 맡기는 결단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칼럼 / 에콰도르 임동섭 선교사에콰도르 임동섭 때밀이 수건과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 나라

2024-03-15

[등불 아래서] 빌려쓰는 오늘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지구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손으로부터 지구를 빌려 쓰는 것이다."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이 말은 1971년 웬델 베리가 최초로 쓴 표현이 변화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우리 것이 아니라 우리 자손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말이니 틀림없는 사실이고, 잊지 말아야 할 생각이다. 우리의 계획이 아무리 멋져 보여도 미래 우리 자손들을 생각하며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어떤 이는 "빌려 쓰는 것인데 갚을 능력이 없다면 이는 도둑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갚을 능력이 있을까. 오용하고 파괴할 능력은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회복하고 복구할 능력이 우리에게 정말 있을까. 근본적으로 묻는다면 지구가 본래 우리와 우리 자손 것이었는가.   돌이켜 보면 우리 것으로 생각하는 여기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우리가 겪는 '우리의 위기'를 '지구의 위기'라고 말하는 것만 보아도 우리 마음 밑바닥에는 지구의 주인이 당연히 우리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지구는 아쉬울 것이 없다.   출발선을 다시 그어보자.   "주님이시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님께 속하였으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님의 것이로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또는 우리 자손의 것을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쓰고 있다. 그러니 지구를 고치려면 하나님을 생각하며 계획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청지기다. 그런데 이 말은 자주 하나님 것이니 조심 또 조심하며, 항상 주인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우리가 빌려서 쓰는 것이 어떤 나라인가. 우리가 망치고 파괴할 세상이 아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세상이고 하나님의 나라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오늘 구하고, 오늘 즐기며, 오늘 누린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왜 먹고 마시는 것에 앞서는가. 먹는 것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라는 비장한 군사가 되는 것이 다는 아니다. 의롭고 아름답고 선한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맛볼 수 있으니, 무엇보다 복된 것이다.   우리는 조상에게 오늘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로부터 오늘을 빌려 쓰고 있다. 그러므로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오늘 맛본다. 하늘의 청지기는 근엄한 창고지기가 아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빛나게 하는 빛이고 소금이며 세상을 참으로 즐거워할 줄 알고 아름답게 만드는 이들이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하나님 나라 우리 자손들 권능과 영광

2023-08-07

"요한 계시록으로 찾는 하나님 나라"

    말씀 사경회를 통해 성경의 이해를 돕고 성도들의 바른 신앙의 삶을 인도하는 '열린문 장로교회 바이블 엑스포(Bible Exposition)'가 15일 시작돼 오는 19일(금)까지 계속된다.   올해의 성경 강해 책은 '요한 계시록'. 벤쿠버 그레이스 한인교회 박신일 목사를 강사로  초청해 현대 그리스도인을 위한 요한 계시록의 메세지를 강해한다.  박 목사는 "요한 계시록은 적그리스도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책이라고 강조하며 그리스도를 더 잘 알기 위한 책"이라고 강조한다.    김용훈 담임목사는 "이 시대를 살아 가면서 복음의 완성이라는 큰 그림을 보여주는 요한 계시록을 성도들이 공부하므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또한 새하늘과 새땅을 기대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B. Th.)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한 박 목사는 밴쿠버에서 2003년 '그레이스 한인교회'를 개척했으며, 캐나다의 복음적인 교단인 EFCC(Evangelical Free Church of Canada)에 소속돼  지난 20년 동안 밴쿠버에 여섯 개의 분립 교회와 한국에 한 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신앙인의 삶을 추구하며 복음 중심의 목회,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는 목회, 선교와 전도 지향적인 목회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의 목회 비전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이다.     한편, 집회는 5월 19일 금요일까지 오후 7시 30분에 시작된다.  문의:703-318-8970 장소: 3001 Centreville Rd. Herndon, VA(열린문 장로교회)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계시록 하나님 하나님 나라 그레이스 한인교회 장로교회 바이블

2023-05-15

신약의 인물-밭에 감춘 보화를 발견한 사람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관한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그 중에 첫 번째 비유는 ‘밭에 감춘 보화를 발견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이 비유에 대한 말씀을 들은 것이 기억에 납니다. 주인의 밭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던 종이 어느 날 밭을 갈던 중에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합니다. 종은 그 보화를 가만히 묻어 두고,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가 ’천국‘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잦은 전쟁 등으로 인해서 값비싼 소유를 땅에 묻어 두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말씀은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화를 묻어 둔 원래 주인과 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극명하게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먼저 보화를 묻어 둔 원래 주인입니다. 그 사람이 보화를 땅에 묻었다는 것은 그 보화가 값비싼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둑이나, 약탈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땅에 묻어 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입니다. 묻어 둔 다음에 주인은 그 보화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 버린 겁니다. 왜 그 존재를 잊어 버렸을까요? 묻어둔 보화가 없어도 충분한 재물이 손에 쥐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보화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더 좋고, 귀한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돌아가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처분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 13장44절. 이 사람은 보화를 발견한 후 도로 그것을 ‘숨겨두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감추인 보화’에서 ‘감추다’와 ‘숨겨두다’는 같은 의미이지만 헬라어 원어로는 조금 다릅니다. 먼저 ‘감추다’는 ‘케크륌메노’로 원형은 ‘크륍토’입니다. ‘숨기다, 감추다, 덮다’의 뜻입니다. 그런데 ‘케크륌메노’가 수동태로 사용이 되어 있습니다. ‘보화가 숨겨졌다.’는 의미입니다. 즉, ‘보화’가 주체입니다. 반면 ‘숨겨두다’는 ‘에크뤱센’으로 되어 있는데, 원형인 ‘크륍토’의 능동태입니다. ‘사람이 숨겼다.’로 사람이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보화는 숨겨졌고, 그리고 한 사람이 보화를 발견한 후에 숨겼다는 겁니다. 보화를 다시 숨긴 사람은 그 보화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다시 숨긴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서 이 밭을 삽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전 재산보다 보화가 더 값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보화를 밭에 숨긴 사람은 그 보화보다도 자신의 소유가 더 크기 때문에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뒤에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보다 이 보화를 더 크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천국이다.’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죽으면 가는 하늘나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도 포함이 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 장소 등을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라고 말합니다. 천국이 이와 같다는 것은 어떤 사람은 ‘천국’,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그 보다 더 좋고, 귀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 명예, 성공과 같이 이 땅에서 더 값어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천국을 그저 삶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천국을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살 값어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질보다, 명예보다, 이 땅에서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천국’,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값어치 있고,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천국’,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보화가 묻혀진 상태에서 다른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에 보화의 존재를 망각하는 삶일까요? 아니면 보화의 가치를 알고 모든 소유를 팔아서 보화가 묻힌 밭을 사려고 하는 삶입니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내 자존심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때론 눈앞에 보이는 돈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명예, 세상의 즐거움에 더 집착하고 살지 않습니까? 보화의 가치를 알고 모든 소유를 팔아서 밭을 산 사람처럼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바라며, 갈망하며,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칼럼신약 인물 감추인 보화 하나님 나라 물질 명예

2023-05-05

[삶과 믿음] 예수의 선포 6 -활짝 열려있는 하나님 나라 (눅 14:15-24, 마20:1-16)

서양의 전통신학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너무 중시하는 바람에 예수의 삶이 가지고 있는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놓쳐 왔고, 지금은 예수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한국 교회가 서양의 전통신앙을 고집하고 있는 역설을 주목하고 본 칼럼에서는 예수의 삶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한국 교회가 서양의 새로운 신학적인 경향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서양도, 동양도 다 감당하지 못할 신비요, 기독교 신앙의 참된 내용이다. 결국 우리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모두 다 아우르는 ‘참된 예수(real Jesus)’, ‘총체적 그리스도(total Christ)’를 이해하고 그 예수를 살아가야 한다. 예수의 선포는 이러한 균형과 깊이로 우리를 인도하는 마중물이다.       누가복음 14장:15-24절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초청에 대해서 선포하신다. 잔치에 초청받은 자들이 밭을 사고 소도 사고 장가도 들고 해서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하자(14:18-20), 잔치의 주인은 종들에게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앞 못 보는 자들을 데려오고(14:21), 큰길과 시골길로 가서 (사람을) 억지로 다 데리고 와서 ‘내 집을 채우라’고 한다(14:23).     마태복음 20장 1-16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일한 자들과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자들이 모두 동일한 품삯을 받는다. 하루 종일 일한 자들이 원망하자 포도원 주인은 “나는 품삯에 대한 약속을 지켰고,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것이다”(마20:13-16)고 말한다.     두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선민 이스라엘로부터 고난받는 자들과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되거나, 하나님의 은총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동일할 것(같은 품삯)이라는 구속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서 엿볼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하나님 나라의 개방성이다. 특별히 고난받는 자들에게 활짝 열려있다: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앞 못 보는 자!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다. 더 나아가 큰길과 시골길에서도 강권하여 데려와 하나님 나라를 채운다. 한국어 성경은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데려와야 할 대상을 고난받는 자들로 이미 언급했기 때문에 생략했을 수도 있지만, 목적어를 생략함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전 인류를 향해 열려있다는 것을 시사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는 자들을 억지로 끌고 올 정도로 하나님 나라는 열정적으로 개방적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불공평’하게 개방적인 나라다. 종일 일한 자들이나 한 시간 일한 자들이 모두 동일한 삯을 받는다. 그렇다면 불공평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불공평의 동기가 명확하다: 장터에서 놀고 서 있는 자들(마20:3), 종일토록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자들(마20:6)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에게도 같은 은총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이다(마20:14-15).     하나님 나라는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자들에게까지 개방적이다. 그들이 왜 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다”(마20:7)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게으름을 넘어서서 사회적, 구조적 문제로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우리 모두를 애타게 찾아다니며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일과 삯의 균등한 주고받음’이라는 속 좁은 개별적 평등에 집착하는 모두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하는 기쁜 소식이기를 소망한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하나님 예수 하나님 나라 서양도 동양도 선민 이스라엘

2022-07-28

[삶과 믿음] 예수의 선포 5-부와 하나님 나라(막10:17-31)

기독교는 가난한 자들의 종교인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막10:23). 부자 교회, 부자 기독교 국가도 많을 뿐만 아니라, 부자도 부자 나름인데 도대체 예수는 왜 이 ‘땅에서의 부’와 ‘하나님 나라’가 서로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 부자는 구약의 계명을 잘 따르는, 따라서 영적으로도 부자였다(막10:19). 구약을 잘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과 나눈다는 것도 포함한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돌보는 것이 구약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구약의 가르침을 잘 지켰다는 부자에게 예수는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너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 후에 나를 따르라(막10:21). 만약 예수의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지독하게 극단적인 종교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서 예수를 따르겠다는 자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본문은 부와 하나님 나라를 대비한 것이라기보다는‘영생을 스스로 얻으려는 자’와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대비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당황해서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답했다(막10:26-27). 그러나 이어지는 본문에서 예수는 다시 “나와 복음을 위해서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식, 전토를 버린 자들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선포한다(막10:30). 부모와 자식까지 버리라니 참으로 끔찍한 말씀이다. 따라서 본문이 ‘하나님의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혹은, 제자들이 자신들을 미화하기 위해서 예수의 가르침을 편집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제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쫓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 나라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의 것들을 버리고 예수를 쫓은 것으로 보인다(막10:37). 그들의 버림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함이었다. 기만적 버림과 내려놓음은 우리에게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본문의 주된 주제가 정말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면, 본문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 구약의 욥처럼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자들과 부지런히 나누는 착한 부자들에게 예수는 어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주실 것인가?     본문을 통해서 ‘부자’가 누구인가 규정하기도 어렵고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의 올바른 의미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은 자신의 소유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부와 하나님 나라를 따로 구분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흔하고, 따라서 부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표현도 교회에서 심심찮게 듣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 결코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반되어야 하는 ‘버림, 내려놓음, 나눔’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 역사에서 많은 성자가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예수를 쫓았다. 사막 교부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버리고 사막에서 움집을 짓고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명상했으며, 그들의 버림은 기도와 노동이라는 수도원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부와 부를 축적하는 일체의 과정은 이 땅의 나라에 속한 일이요,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일이다. 이 선명한 예수의 가르침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여전히 생명의 양식이 되기를 소망한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하나님 예수 하나님 나라 세상 나라 부자 교회

2022-06-30

[삶과 믿음] 예수의 선포 4-하나님 나라(마25:31-46)

도대체 기독교는 어떤 종교일까? 나의 구원, 나의 헌신과 믿음, 나의 삶,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가장 우선적으로 하는 종교일까? 교회가 오랫동안 증거한 기독교는 사도바울이 기록한 서신을 중심으로 ‘누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주제에 큰 관심을 보여온, 구원중심의 기독교 사상이었다. ‘구원’은 모든 종교의 보편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예수의 선포는 구원을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드러낸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5장은 예수께서 재림했을 때 고통당하는 자들을 도운 자들은 천국에, 그들을 외면한 자는 영벌에 처할 것이라고 기록한다. 구체적으로 본문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충격적이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고 섬긴 자들이 사실은 예수를 섬긴 것이다(25:35-40).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25:40). 더 나아가 고통받는 자들을 섬긴 의로운 사람들은 그들이 사실은 예수를 섬겼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25:37).     본문의 말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예측을 넘어선다. 우선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긴 것이 어떻게 예수를 섬긴 것과 동일할까? 해방신학자들 가운데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이 바로 고통당한 예수다”는 다소 극단적인 견해를 보이는 자들이 있는데 오늘 본문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혹은 고통당하는 자들 속에 예수께서 계신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고난당한 예수와 고통당하는 자들의 깊고도 깊은 연대(solidarity)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땅에서 가난, 질병, 탄압, 외면으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 속에 예수께서 계신다. 기독교는 ‘나’에 관한 종교이기도 하지만, 고통당하는 ‘타자’에 관한 종교다.     둘째, 예수는 ‘고난 속에 있는 자들을 섬긴 사람들을’ 의인으로 간주했다. ‘믿음’ ‘예배’ ‘선교’ ‘헌신’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단어나 표현이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단어도 언급되지 않았다. 오로지 고통당하는 자들과 그들을 섬긴 자만이 등장한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다. 그런데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긴 자들은 자신들이 사실은 예수를 섬겼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즉 의인들의 섬김은 ‘의식적인 선행’이 아니라 미처 자신들이 선행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일어난 행위이다. 이것은 윤리적, 종교적 올바름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본질적인 연대(solidarity)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예수를 쫓아서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랑이 단순히 ‘예수의 명령을 쫓아서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결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혹은 오늘 본문을 윤리적으로 이해해서 ‘나도’ 의인들처럼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겨야지라는 결심으로 타자를 사랑한다면, 역설적으로 오늘 본문의 의인들이 결코 될 수 없다. ‘나의 선행에 대한 의식’이 이미 생겨나 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종교적 신념이나 헌신이 동기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과 아픔이 우리 행동의 주체가 되어서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들과 고통의 연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다.       기독교는 ‘나’에 대한 종교, ‘구원’에 대한 종교이기도 하지만, 고통받는 ‘타자’에 대한 종교, ‘연대’에 관한 종교다. 예수께서 그들과 연대를 이루시며, 고난의 연대 속에 있는 모든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하나님 예수 하나님 나라 윤리적 종교적 가난 질병

2022-05-26

[삶과 믿음] 예수의 선포 3 -하나님 나라

지난 칼럼에는 ‘예수 자신’에 대한 예수의 선포를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많은 신앙인은 하나님 나라를 죽으면 들어가는 천국과 동일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마태복음에서는 ‘하늘나라(the Kingdom of Haven)’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회개하라’는 말씀은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3:2),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1:15)고 기록한다. 그 외에서 수많은 유사한 사건에서 마태복음은 천국,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하나님 나라라고 기록하기 때문에, 천국은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한 단면은 죽고 나서 가게 되는 천국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마7:21) 말씀하셨는데, 한국어 성경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천국에 있다”고 전한다. ‘들어간다’는 의미의 동사와 전치사(eis)와 ‘…에 있다’를 의미하는 전치사(en)가 뚜렷이 대구를 이룬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 마태복음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는데(마 3:2; 4;17; 10:7), 이는 하나님이 예수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실체라는 것을 예수 자신이 선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천국은 우리 가운데 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 장소적 의미를 넘어서 더 깊고 풍부한 의미를 가진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한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고 예수 스스로 증거하고 있으며(눅4:43),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고(눅  8:1),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보냈다(눅 9:2). 예수의 사명 핵심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 세상에 널리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예측 가능한 나라와 예측 불가능한 나라로 구분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예측 가능한 나라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종말과 관련된 나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세우는 나라에 관한 것인데 제자들도 이 하나님 나라를 증거했다. 제자들은 또한 하나님 나라에 누가 들어갈 것인가, 누가 들어가지 못할 것인가, 누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을 자신들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해버린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린 늘 우리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충만하다.     예수께서도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마16:16-19), 악한 자는 쫓아버리고 선한 자들만이 속하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나라를 선포했다(막4:1-20; 마12:28). 하나님 나라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나라며(마7:21-24), 의인들이 해와 같이 빛나는 나라고(마13:43), 눈이 범죄하면 눈을 뽑아버리고 들어가는 것이 더 나은 나라다(막9:47).     그런데 예수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도 선포했다. 예측 불가능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다음 칼럼에서 다루겠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하나님 예수 하나님 나라 나라 그리스도 예수로 우리

2022-04-28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한다’

 북미주 한인 기독실업인회(KCBMC)가 오는 6일(토)   CEO 스쿨을 개최한다.   ‘포스트 코로나 경영환경과 도전’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편의점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김기일 키친푸드 페어 회장이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그는 토론토 지역에서 가장 성공한 한인사업자로 알려져 있으며 80여개의 가입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1강 연설자 폴 현(Paul Hyon) KCBMC 사무총장이 ‘기업재정전략’을 주제로 비즈니스 운영에 필요한 미국은행 활용법에게 대해 강의한다.     폴 현 사무총장은 모아은행장 출신의 금융전문가다. 필라델피아 지역을 대표하는 영향력있는 한인금융인들 중에 한명으로 필라델피아 지역 중심의 수 많은 기업들에게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며 창업과 성장, 그리고 성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본보를 방문한 폴현 사무총장은 “KCBMC는 사업가와 전문인을 대상으로 전도, 양육, 리더십 개발, 일터 변화를 통하여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비영리 국제단체이며, 현재 전 세계 95개국에 조직된 초교파 기독교 사역단체”라고 소개했다.   김영주 KCMBC 동부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예전 CEO 스쿨에 참여했다가 변화를 겪고서 영적으로 성숙하게 됐고 기업도 크게 성장하는 등 큰 도움을 받았다”면서 “혼자만의 변화보다는 모든 기독 실업인들의 변화을 돕고자 이번 행사를 꾸렸다”고 전했다.     2강 연설자 강고은 옴니화재 대표는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를 주제로, 기업 운영에 불가피한 위험요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강 대표는 동부지역 한인 최대보험사인 옴니화재보험의 대표로, 차별화된 위험관리 전문서비스와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적인 고객관리 시스템을 제공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3강 연설자 이용진 변호사는 ‘펜데믹 시대 CEO 법률상식’을 주제로 창업과 기업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법률을 선별해 알려줄 계획이다.   이용진 변호사는 캘리포니아 어바인 지역에서 창업과 이민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특히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을 위해 다양한 세미나 등을 준비하고 보다 전문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4강 지호준 회계사는 ‘바이든 시대 절세 전략’이라는 주제로 달라진 세무환경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지 회계사는 오하이오 콜럼비아에서 JC회계법인을 운영하며 기업과 개인고객들에게 회계 및 경영컨설팅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행사전 만찬 행사는 오늘(5일) 오후6시 메릴랜드 베데스다 노스 메리어트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리며, 본 강의 행사는 6일(토) 오전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국과학협력센터(1952 Gallows Rd, Vienna, VA 22182)에서 개최한다.     김옥채 기자 [email protected]비즈니스 하나님 비즈니스 세계 하나님 나라 비즈니스 리스크

2021-11-04

[삶과 믿음] 예수의 삶-가르침: 원수를 사랑하라! (눅6:27-38)

예수의 삶은 나눔, 가르침, 저항·투쟁, 영적인 삶, 선포, 보내심이라는 6개의 범주로 요약할 수 있고 누가복음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지난 칼럼에서 나눔에 대해서 다루었고 이번 칼럼에서는 가르침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예수께서는, 새 옷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포도주(눅5:36-39), 소경이 소경을 인도함, 타자의 눈 속의 티와 자신의 눈 속의 들보, 좋은 열매와 못된 열매(눅6:39-45), 장터에서 춤추는 아이들(눅7:31-32), 씨뿌리는 자와 등불(눅8:4-25), 선한 사마리아사람(눅10:25-37), 종말에 대한 준비(눅12:35-48),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눅13:6-9), 좁은 문(눅13:24-30), 청함의 받은 자들(눅14:7-24), 회개, 탕자(눅15:3-32), 청지기(눅16:1-13), 부자와 나사로(눅16:19-31), 무익한 종(눅17:6-10), 과부의 간청과 기도(눅18:2-8), 악한 농부들(20:9-18)등의 비유로 다채로운 주제를 가르쳤다.     또한 예수께서는 비유만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통받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눅6:20-22), 원수를 사랑하라(눅6:27-38), 외식, 탐욕, 성령, 염려, 하나님 나라(눅12:1-34; 13:1-35; 18:15-17; 19:11-27), 회개와 외식, 제자의 도(눅14:25-35), 회개와 용서(눅17:1-4), 재림(눅17:20-370), 기도(눅18:1-14), 영생과 재물과 선(눅18:18-30)에 대해서 구체적인 교훈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복음서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의 이러한 가르침인데, 기적이나 십자가와 부활에만 초점을 맞추면 예수의 삶의 그 풍요로움을 놓치고 만다.     이 수많은 가르침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나와 아무 연관이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을 우리는 최고의 선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니! 누가복음 6:27-38까지의 말씀 속에는, ①사랑이 대가와 보상을 넘어서는 ‘무조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②나와 타자의 행위는 상호적이며, 무조건적 사랑도 목적론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가르침이 함께 등장한다.       첫째,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죄인들도 하는 일이다(6:32). 사랑은 그 ‘상대’를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 하며, 나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나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눅6:27-28). 더 나아가,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며, 달라고 하는 자에게 주며, 내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눅6:29-31).       둘째, 도대체 왜 원수조차 사랑해야 하는가? 여기에 조건적 거래와 대가를 기대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눅6:31), 아무것도 보상을 바라지 말라, 그러면 높으신 자의 아들이 될 것이다(눅6:35),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비판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러면 정죄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러면 용서받을 것이다(눅6:37).     과연 원수조차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랑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도 진정한 사랑일까? 무조건적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아는 예수께서 목적론적 대가, 조건적인 거래를 기대하라는 말씀을 함께 하신 것일까? 다음 칼럼에서 이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예수 원수 무조건적 사랑 무조건적 특징 하나님 나라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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